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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렌 : 데마시아의 힘

“이 왕국과 이 민족이 내게 모든 것을 주었다. 

그 은혜에 온전히 보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내 도리다.”

 

가렌

가렌의 스토리

가렌과 그의 여동생 럭스는 지체 높은 크라운가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가렌은 언젠가 자신도 목숨을 다해 데마시아 왕위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군 장교로서 화려한 전공을 세운 아버지 피테르와 불굴의 선봉대 검대장이었던 고모 티아나는 국왕 자르반 3세로부터 큰 신임을 얻었고, 사람들은 언젠가 가렌 역시 왕자 자르반 4세를 섬기게 되리라 믿었다.

룬 전쟁 이후 세워진 데마시아 왕국은 건국 이후 수 세기 동안 온갖 갈등과 불화로 몸살을 앓았다. 데마시아군의 기동대 기사였던 가렌의 숙부는 어린 가렌과 럭스에게 성벽 밖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바깥세상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성벽이 없으면 백성들을 지킬 수 없다고 숙부는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어떤 존재가 비교적 평화로운 이 시기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존재가 추방된 마법사일지, 심연에서 기어 나온 피조물일지, 아니면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의 존재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숙부는 전투 중에 마법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가렌이 11살이 채 되기 전의 일이었다. 가렌은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어린 동생의 눈에 비친 공포를 보았다. 그리고 맹세했다. 마법이야말로 데마시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이며, 다시는 마법이 데마시아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확고부동한 긍지를 가지고 데마시아의 이념을 철저히 따라야만 마법으로부터 왕국을 지킬 수 있었다.

12살이 되던 해, 가렌은 하이 실버미어의 크라운가드 저택을 떠나 군에 입대했다. 수습 기사로 군 생활을 시작한 가렌은 밤낮없이 훈련과 전술 연구에 매진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렌의 정신과 육체는 데마시아산 강철로 만든 무기처럼 날카롭고 단단해졌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주군이 될 왕자 자르반 4세를 만났다. 급속도로 친해진 두 사람은 곧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가렌



이후 수년간 가렌은 데마시아의 전사이자 방벽 부대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전장을 휘저으며 활약하던 가렌은 곧 적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18살이 되던 해, 가렌은 프렐요드 국경을 향한 출정에 참여했다. 이때 가렌은 침묵의 숲에서 부패한 광신자들을 축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화이트록의 용맹한 수호자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기도 했다.

국왕 자르반 3세는 가렌이 속한 부대를 위대한 도시 데마시아로 소환했다. 용기의 전당에서 모든 궁정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접 그 공을 치하하려는 생각이었다. 근래에 대원수 자리에 오른 티아나 크라운가드는 그 자리에서 불굴의 선봉대 선발 시험에 자신의 조카를 추천했다.

가렌


가렌은 시험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여동생 럭스, 그리고 영지에 거주하는 평민들이 가렌을 반겨 주었다. 지적이고 역량 있는 여성으로 자란 동생을 보고 기뻐한 것도 잠시, 가렌은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럭스에게서 마법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희미하게 피어올랐던 의심이 이제는 뚜렷한 불신이 되어 가렌을 괴롭혔지만, 가렌은 이내 의심을 떨쳐 냈다. '크라운가드' 가문의 일원이 숙부를 죽인 원수들과 같은 힘을 다룰 줄 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용맹하고 능숙하게 시험을 치른 가렌은 불굴의 선봉대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들과 왕세자가 보는 앞에서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후 럭스와 어머니는 수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빛의 사자 수도회 일원으로 왕가를 섬겼지만, 가렌은 여동생을 최대한 멀리했다. 가렌은 세상 누구보다도 동생을 사랑했지만, 가까이하기에는 마음속에 꺼림칙한 뭔가가 있었다. 만약 동생에 대한 의심이 사실로 밝혀지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렌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신 전보다 더욱 전투에 몸을 던지고 훈련에 힘을 쏟았다.

불굴의 선봉대 신임 검대장이 전사하자, 동료 선봉대원들은 가렌을 그 후임으로 추천했다. 다른 후보자는 없었다.

확고한 의지로 마시아를 수호하는 가렌은 어떤 적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가렌은 데마시아 최강의 군인이자 데마시아가 추구하는 위대하고 고결한 이념 그 자체이다.

가렌

가렌의 단편소설

전사와 할멈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마녀는 비슷한 기억을 계속해서 찾아냈다. 모두 하나같이 눈 부신 빛이 쏟아지며 끝이 났다.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사랑과 공포, 부정과 분노, 배신감과 보호 심리가 뒤섞인 불협화음 같은 감정이 묻혀 있었다.

가렌의 말이 맞았다. 좋은 기억이었다. 목 매인 병사의 기억을 모두 합쳐도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마녀는 미소를 지었다. 가렌이 그녀의 복부를 향해 검을 올려놓은 것은 똑똑한 처사였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빼앗긴 기억은 그 존재조차 망각되므로 원하는 만큼 기억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뻗으며 마녀는 빛의 소녀와 관련된 기억을 찾아 가렌의 머릿속을 샅샅이 뒤졌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을 골라낸 후에야 가렌의 머릿속에서 빠져나왔다.

“좋아.” 마녀가 눈을 뜨며 말했다. “이거면 되겠어.” 마녀가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거래는 성사됐어. 하나의 생명을 위한 하나의 기억. 이제 이놈을 데리고 당장 나가.”

가렌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 매인 병사에게로 갔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병사를 일으켜 세우고 마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동굴 밖으로 뒷걸음질 치며 걸었다.

‘별난 놈. 내가 계약을 어길까 봐 걱정되나 보군. 이미 어긴 줄도 모르고.’

불현듯 가렌이 우뚝 멈춰섰다.

가렌



그리고 부축하고 있던 동료에게서 손을 떼고 순식간에 진격해 왔다. 시선은 그녀의 두 눈에 여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즉흥적인 도발에 마녀는 전율을 느꼈다. 가렌은 너무 크고, 너무 굼뜨고, 너무 느려서 거추장스러운 검을 겨누기도 전에 그녀의 공격을 받을 것이었다. 가렌의 기억에 목마른 마녀는 손가락 끝에서 어둠의 에너지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지만 그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네 눈에선 수년에 걸쳐 모인 감미로운 기억들이 보여.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내가 전부 마셔 버…’

무언가 차가운 것이 그녀의 몸속에서 느껴졌다. 쇠였다. 가렌의 갑옷에서 풍겨오던 시큼한 악취가 종전보다 더 진하게 그녀의 기도를 타고 올라왔다.

마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에 꽂힌 가렌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희미해진 눈빛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가렌의 갑옷 위로 검붉은 피가 떨어졌다.

녀석은 생각보다 빨랐다.

“무슨 짓이야?” 입안에 무언가 차오르는 듯 불분명한 발음으로 마녀가 물었다.

“계약을 어기셨습니다.” 가렌이 답했다.

지저분해진 이를 드러내며 마녀가 미소 지었다. “어떻게 알았나?”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짐을 덜어낸 듯이.” 가렌이 답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뭔가 잘못된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돌려주십시오.”

차가운 동굴 바닥 위의 진흙에 피가 섞이는 동안 마녀는 생각에 잠겼다.

가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억을 되돌려 놓으며 마녀는 손가락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가렌은 고통 속에서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었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마녀는 그의 기억이 온전히 돌아왔다는 사실을 그의 지친 두 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불쌍하고도 어리석은 녀석이었다.

“애초에 거래는 왜 한 거야?” 마녀가 물었다. “생각보다 세던데. 훨씬 더 세던데. 밧줄이고 뭐고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전에 나를 산산조각 낼 수 있었을 텐데. 머릿속은 보여줄 필요도 없었잖아?”

가렌



“남의 집에 와서 기회도 주지 않고 피부터 흘리게 하면… 무례하기 때문이죠.”

마녀가 켈켈거리며 웃었다.

“그게 데마시아의 규칙인가?”

“제 규칙입니다.” 가렌이 말했다. 그리고 마녀의 가슴에서 검을 빼냈다. 상처가 드러나며 피가 흘러나왔고, 마녀는 쓰러지자마자 숨을 거뒀다.

가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우를 일으켜 세워 데마시아로 돌아가는 먼 길을 떠났다.

‘규칙이 없다면…’ 가렌은 생각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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